사람들. 특히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마다 제각각 마음에 품고 두고두고 회상하는 인생드라마가 몇 편씩 있을 겁니다. 제 경우 정말 많은 인생드라마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미생입니다.
TVN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배우 임시완)가 소속된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ONE International)’의 배경이자 드라마 속 주 무대인 빌딩은 바로 서울역 신 역사 앞에 실제 위치한 ‘서울스퀘어(Seoul Square)’라는 빌딩입니다.
서울스퀘어의 구 명칭은 ‘대우센터 빌딩’이었습니다. 이 빌딩은 지하 2층~지상 23층, 대지면적 1만583㎡, 연면적 13만2560㎡ 규모로 지난 1977년 6월 완공되었습니다. 위치는 서울특별시 중구 한강대로 416(중구 남대문로5가 541)이며, 남산을 뒤로 한 빼어난 입지를 자랑합니다.
과거엔 기차를 타고 처음 서울로 상경했던 지방 사람들에겐, 서울의 관문이었던 서울역(구 역사)에 도착 후 역사를 나오자마자 바로 건너편에 보였던, 이 빌딩의 웅장한 모습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각인될 정도로 서울의 랜드 마크였다고 합니다.
이 빌딩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까지 고도성장한 한국경제의 상징이었고,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시작한 대우가 70년대 초반 경제성장과 수출호조의 물살에 휩쓸려 단기간 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뒤 1974년 대우가 막 벤처기업을 벗어났을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이 빌딩의 수용인원을 모두 대우가족으로 채웠으면 하던 바람이 담긴 건물이었답니다.
훗날 그의 바람처럼 이 건물은 완공 후 대우그룹의 핵심계열사들이 입주해 90년대 후반까지 수많은 대우가족들이 이곳에서 일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빌딩을 과거엔 ‘대우빌딩’, ‘서울역 대우빌딩’ 이렇게 불렀답니다.
하지만, 밀레니엄 시대를 앞둔 1999년 말 대우사태(대우그룹의 경영위기로 인한 그룹해체 사태) 이후 이 건물은 채권단인 캠코에 넘어가면서 여기에 입주해있던 많은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하나 둘 빌딩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대우건설이 남아 ‘대우재단빌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 후 ‘DAEWOO’라는 빌딩 외벽의 영문 간판을 수년간 유지했었습니다.
2006년 11월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빌딩도 같이 인수되었으나, 자금난을 겪던 금호는 결국 2007년 모건스탠리에 9,600억 원이라는 어마 무시한 금액에 이 빌딩을 매각했습니다.
대우재단빌딩을 사들인 모건스탠리는 무려 1,000억 원이 넘는 리모델링 공사를 한 후에 지금의 서울스퀘어로 건물명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11년 모건스탠리는 싱가포르 투자회사인 알파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에 약 3,000억 원의 손절매를 감행했습니다.
고로 이 빌딩은 현재 싱가포르 계열 투자회사의 소유물이며, 외국계 자본에 잠식된 서울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명칭을 서울스퀘어로 변경 후 현재 빌딩을 임차 중인 회사는 LG전자, LG이노텍, LG CNS, 벤츠코리아, 두산캐피탈, 두산DST 등이 있습니다.
서울스퀘어는 2007년 모건스탠리에서 인수 후 리노베이션을 위한 대수선, 수선 건축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약 2년 6개월여의 기간이 걸려 2009년 11월 개관했습니다. 서울스퀘어는 리노베이션 후 일반인들에게 MALL의 인식이 강하지만, 입주사에게는 호텔급 비즈니스 종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개념 프라임오피스로 변모한 것입니다.
당시 용적률 초과로 인한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해 외관은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내부만 변경된 서울스퀘어에 엄청난 반전이 있었는데... 빌딩 전면에 LED 조명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캔버스를 설치해 매일 밤 현대적인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눈이 오는 겨울밤. 서울역 앞에 서서 이 빌딩에 수 많은 LED 조명을 통해 표현되는 미디어아트를 말 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는 과거 사회초년생 시절 첫 취업 후 자본 집중의 논리에 의해 여러 차례 이직을 경험했는데요. 그 중 세 번째 회사가 이 빌딩이 보이는 충정로에 있었고, 네 번째 회사는 서울스퀘어 바로 옆 남대문경찰서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그때가... 제 기억으론 당시 이태원에 거주하던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였습니다. 동자동으로 출근했을 땐 퇴근 후 서울역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고서 남산순환로를 타고 귀가했던 일상들이 떠오릅니다.
그때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가 저를 만나겠다고 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찾아올 때면 서울역 환승센터 앞에서 여자친구가 내릴 버스를 기다리며, 서울스퀘어의 미디어아트와 그 앞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직장인들의 천라만상을 가만히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 직장 때문에 충정로에서 출퇴근 하던 시절엔 서울스퀘어의 미디어아트는 매일 밤 야근으로 회사를 떠나지 못했던 제가 옥상에서 담배를 태울 때마다 위로받던 풍경이었습니다.
이 빌딩 주변에서 직장 생활이나 거주를 했던 많은 분들께서도 저 이상의 남다른 감상을 간직하고 계시겠지만, 제 경우 가장 치열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사회를 배워가던 시기에, 바쁜 일상 가운데 매일 보던 배경처럼 각인되어 더욱 남다른 것 같네요.
지난겨울 내내 해외에 체류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미생을 한 편씩, 한 편씩 다시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 빌딩을 기록하고 싶어서 계속 벼르던중 드디어 포스팅하게 되어 즐겁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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