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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가정사 인생 고민

무사장구 2018. 6. 14. 15:03

<질문>  좀 답답한 저희 집 가정사를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학생이라 힘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제재를 못 한다 생각했지만 그건 커서도 똑같더군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그냥 눈만 마주쳐도 크게 싸우는 형식이었어요. 그 이유로서는 아빠의 잦은 음주로 인한 폭행과 폭언 또는 하다 못한 자살 쇼 칼부림 등 그리고 엄마의 돈에 대한 사치와 불어나버린 빚과 예전에 있었던 바람기로 두 분은 엄청 많이 싸우셨거든요. 


그때만 해도 저도 역시 죽을 거 같더라구요.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도 딱히 없을뿐더러 저는 위에 두 살 터울인 오빠가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크게 대판 싸우셔도 오빠는 중재를 절대 안하고 방에서 폰 게임만 하고 노는 수준? 그래서 저희 집에서 제가 둘째이지만 첫째의 부담감과 막연한 공포심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부모님을 말렸어요. 


이제 성인이 되어 저희 부모님을 보니까 자주 안 싸우세요. 아빠가 음주를 거의 끊다시피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미 틀어져버린 엄마의 성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아직도 사치가 심해서 저번에 카드빚이 800정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빠와 저는 엄마카드를 가위로 잘라버렸지만 그래도 있는 돈이면 다 아낄 줄 모르고 다 써요. 


근데 성격도 굉장히 이상해졌어요. 예를 들자면 있던 일인데 제가 너무 아파서 방에서 기어 나오다시피 나와서 엄마보고 아프다했는데 “이 미친년이 나도 아픈데 일부로 따라하냐면서 막 화내는? 정말 성격이 이상해졌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갓 군대 제대한 오빠를 엄청 싫어하세요. 할머니가 오빠 보러 집에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 오빠가 할머니 나가실 타이밍 잡아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이 시발새끼야! 너는 무슨 할머니 나가시는데 인사도 안 드리나? 넌 시발 알바시간 맞추는 거밖에 눈에 안 들어오나?” 맨날 이런 식으로 오빠한테 말을 하니까 오빠가 스트레스 받았는지 먹던 밥그릇 설거지통으로 날려서 밥 그릇 깨진 걸 보고 순간 흠칫하더군요.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오빠가 자살하거나 아니면 우발적으로 엄마를 죽인다던가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아빠한테 엄마가 오빠한테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빠도 이미 알고 계신답니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어느 정도 해야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엄마가 돌연 “저 새끼 하는 짓거리 봤냐?”고 갑자기 불같이 화내시고 아빠보고 “왜 대체 나보고 뭐라 하냐!”고 존나 밀어 붙이시더군요. 그래서 또 부모님 싸우시고... 에휴. 답도 없네요. 





이하 상기 질문의 답변입니다




그간 답답하셨죠. 멀리서 보면 지극히 정상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제 각각 조금씩 하자가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얘기를 해서 무엇 하겠어요. 


사실 가족 구성원 간의 성격과 가치관 대립은 사실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상담을 받아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라, 누가 봐도 잘못된 언행은 스스로 자제하고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뭐 이런 카운셀링만 듣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일차적으론 네 식구가 시간을 맞춰서 동시에 가족 상담을 함께 받아보는 것이 최선이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상담이란 과정을 통해서 각자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를 진단하여 그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문제점을 함께 인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변화의 의지가 있는 가족 구성원은 또 노력을 해보는데, 문제는... 안 하는 사람은 또 안 해요.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데 그 중 한명이라도 건성이거나 관심도 없으면 죄다 도루묵입니다. 


아시다시피 부모 자식의 관계는 한 번 성립되면 호적상 죽어서도 지속되는 직계혈족 관계이지만, 부부 관계는 아닙니다. 그만큼 자식이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관계가 부모님 두 분의 부부관계를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관계가 상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질문자님께서 느끼는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부모님 두 분께서 아직도 이혼하지 않고 계속 혼인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점, 부친께서 술을 끊는 등 노력한 점 등에서 찾아볼 수 있겠네요. 


부부 관계는 평등하고 서로 맞추면서 사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상 대부분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더 많이 좋아하는 한쪽이 배우자에게 평생 맞추면서 사는 관계입니다. 마치 기울어진 시소처럼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질문자님의 말씀만 들으면 부친께서는 매일 참으면서 나름의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이런 두 분의 관계를 자녀가 나서서 바꾸기는 여간 쉽지 않습니다. 


일단 가정을 분리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분리해보세요. 오빠도, 질문자님도 각자 알바를 뛰던 취업을 하던지 해서 자립하세요. 그리고 부모님 두 분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바라본 다음 미시적으로 파고들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질문자님께서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그만 자립하셔서 부모님 두 분의 중년과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시고, 자녀 부양에 대한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세요. 거주 분리와 동시에 질문자님은 질문자님의 인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니 문제 해결을 떠나서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좀 덜 받겠지요. 일단 홀로서기를 해보면서 가끔 힘든 일이 있으면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요. 반대로 생계가 안정되어 균형 잡힌 생활이 가능해지면 종종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가끔 교외로 함께 여행도 다니면서 가족애를 다져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일컫는데, 이 속담의 뜻은 사실 한 곳의 공간 또는 한 가지 상황에만 빠져있으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시선에선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향하는 시선이 계속 한쪽으로 쏠려서 문제점을 부각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생각 또한 문제점 쪽으로 기울고 점차 심화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우물 밖으로 나와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시고, 지금 부모님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자신의 인생을 찾는 쪽으로 돌려 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죠. 


아시다시피 답이 없잖아요. 그러니 답답함을 느끼는 그 상황에서 일단 빠져나와보세요. 부모님 문제와 오빠 문제는 차치하고, 일단 질문자님은 개인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